„Ein Romanstoff, der es in sich hat“

„Ein Romanstoff, der es in sich hat“Interview: Andrea Herdegen

erschienen/erscheint bei:

http://www.frankenpost.de, 12/11/13; gekürzt in: Frankenpost, 12/11/13.

Entstehungszeitraum: 09/10/2013

Interview (Kompletter Text)

서울 – 괴테-인스티투트 서울(주한독일문화원)입니다 – Goethe-Institut
http://www.goethe.de/ins/kr/seo/ko8831768.htm

번데기와 막걸리에 대하여

작가 마티아스 폴리티키는 2011년 뮌헨 문학축제의 큐레이터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1999년과 2001년 사이에 몇 주 동안 지냈던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 기간을 배경으로 몇 편의 시도 완성하였다.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 이미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늘날까지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친구를 들 수 있겠네요. 물론, 우정은 고국에서의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외국에서, 그것도 한국과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친구를 얻는 것보다 더 특별한 것은 없지요. 문화적, 공간적 국경을 넘어 우정을 쌓을 수 있다면, 글로벌화의 공포도 사라질 것입니다. 나에게 한국 여행에서 이것 다음으로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낯선 문화공간이 우리에게 선사해 준, 때론 매력적이고 때론 놀라운 경험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가장 쇼킹했던 건, 아주 평범한 즉석 음식판매대에서 산 번데기였죠. 난 도저히 그것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패배감, 심한 전율이 나를 며칠씩이나 괴롭혔습니다. 시를 한 편 쓰고 나서야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이 세상 어디에 있든지 낯선 곳에 있을 때 더 주의깊게 되고 더 상처받기 쉬우며, 더 쉽게 만족하고 충격받으며 감동을 받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곳에서, 그리고 당연히 그 곳에서만 고향의 거리와 고향 거리의 익숙한 길거리 주점들이 그리워지죠. 이 모든 것들은 종종 나에게 문학적 영감이 되곤 합니다.

“누에 번데기 먹기에 대한 조언“
부산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입으로 연습하는 스위스 시인에게 받음

정말 냄비 안을 오래 들여다 보니 말아, 거기에
그것이 – 어두운 갈색의 부글거리며 삶아지는 곳에 –
수천 수백 마리가 끓고 있다.
아주머니가 담아주는 봉지 안을
정말 오래 들여다 보지 말아:
뭐 거기 스무 마리가 들었건,
삼십 마리가 들었건, 상관없지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겁내지마, 그것은 오랫동안 끓여져,
정말로 깊은 잠에 빠져 있어.
이쑤시개를 하나 들고, 네가 이미 자주
치즈 조각을 찔러 먹었듯이, 그래 그렇게 해봐.
가장 괜찮은 것은, 번데기의 등을 노리는 거야,
그런데 가능하면 쳐다봐서는 안돼,
그것이 마지막 짧은 고통으로 거의 꿈틀대지 않고, 깨어나거든.

그리고, 들어봐, 밝은 색이 도는 것은
충분히 익혀지지 않았으니 제쳐놓고, 그래,
그것은 이빨 사이에 들어가자 마자
네게 즙을 쫙 뿌리지.
누워 있는, 어두운 색으로 익혀진 것을 먹어봐,
그럼 너는 금방 알게 될 거야,
그것이 네 혀 위에
아주 가볍게 눕는 것을.

(원본: Ratschlag zum Verzehr der Seidenraupe/누에 번데기 먹기에 대한 조언. 66편의 시, 출판사: Hoffmann und Campe, 2003, 14쪽, 출처: 동서문학 제32권 제3호, 2002, 376~377 쪽, 한국어 번역: 맹완호)

오디오 자료를 청취하기 위하여 가 설치되어야 합니다.

그럼 아무도 번데기 맛을 보지 않았나요?

아니요, 스위스 동료 한 명이 맛을 봤지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나의 “조언“이라는 부제로 “글을 써주었죠“. 그는 같은 제목으로 답시를 썼고 부제에 “진정한 이해“라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그는 번데기를 실제로 먹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루돌프 부스만인데, 그 후로 나에게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감동시킨 한국문학이 있습니까?

김광규 시인의 시, 그 가운데서도 특히 “上行“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 이런 차원의 문화 교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스스로가 분명 여행하는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낯선 나라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하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문학을 미리 접하거나 하여 한국을 이해하려고 하진 않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국 시인들도 마찬가지고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일본사람들(가득 찬 맥주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취하는)과는 달리, 술에 굉장히 셉니다. 맥주 반 컵에 소주 한 잔을 섞어 마시는, 이른바 “폭탄주“라고 불리는 특별한 술에 대한 기억도 있죠. 우리는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한계에 이르기까지 마셨습니다. 이런 류의 인상에 대해서도 다양하고 우스꽝스런 이야기들을 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시인들과의 술자리 자체가 실제로는 우스꽝스럽고 웃기는 일일 뿐 아니라, 음주 의식 사이에서 최고의 즉흥시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한국어로도 번역되고 출판되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막 개관한 서울의 문학관에서 이 이야기를 읽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죠.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늘 추측하는 것처럼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유머감각에 있어서는 말이죠.

왜 여행체류에 대해 글을 씁니까?

그렇게 해야만 하니까요. 나는 한 줄도 내 마음대로 쓰는 법이 없습니다. 나는 써야 할 의무가 없는 여행을 즐기며, 이런 체류가 가장 편하죠. 하지만 낯선 곳에 있는 사람은 현실에 대한 인식에 조금의 변화가 생기면, 이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무엇을 생산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슈바빙에 사는 사람에게는 하이드하우젠**이 곧 낯선 것이 됩니다. 우리 작가들은 이로부터 고통을 받으면서도 이런 강제적인 생산성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우리가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가 우리를 선택합니다. 소재는 우리가 소재들에 어떤 형태를 부여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한국의 해안에서도“

한국의 해안에서도
막걸리를 마시는 모임에서는 보름달의 기름짐을 볼 수 있다:
거기서 바다가 어떻게 소리를 내고,

갈대가 어떻게 소리를 내며,
소나무가 어떻게 그림자처럼 우뚝 솟아있고, 거북선,
마법에 걸린 곰, 그리고 여의주로 가득한 밤이 어떻게 거기에 걸려 있는지

말할 나위 없이 마지막 병이 비워지고
이젠 빈 소리만 들린다
고층건물의 실루엣처럼 높게 솟아 있고
네온바다를 둘러싸고 하늘이 대낮같이 걸려 있고
깊은 곳 고속도로 중앙분리대까지 반짝거리며
전혀 해독할 수 없는 감각의 예언

항상 같은 생선식당 앞에는
항상 유리 수족관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자리까지 가득 찬 게,
조개 그리고 물 밖으로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펄떡거리는 물고기들,
쉴 새 없이 같은 방식으로 불운을 찾고 있다

(출처: Ratschlag zum Verzehr der Seidenraupe. 66 Gedichte, Hoffmann und Campe 2003, 16쪽.)

영국맥주 에일 또는 한국의 막걸리?

막걸리지요. 막걸리 한 병을 독일로 가져갔을 정도입니다.

그것 때문에 한국사람들이 작가님을 좋아하겠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 2001 Hoffmann und Campe 출판사의 마티아스 폴리티키 시집 „긴 코의 끝에서 침묵을 지키다“ 중.
** 뮌헨시에 있는 2개의 구역.
인터뷰: 기테 쵸흐
인문학자, 한국학자
저작권: 기테 쵸흐
2011년 12월

주제 관련 링크

마티아스 폴리티키의 홈페이지
http://www.matthias-politycki.de/politycki.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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